포스트스탠다즈 Post Standards

“이것은 거창한 의미가 아니다. 하나의 예시다.”



평소에도 재활용 소재에 관심이 있었나.

최근 들어 많은 기업과 개인들도 재활용 소재,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있지 않나. 대부분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소재에 대한 갈망이 있을 거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재생플라스틱 이전에 유리를 재활용한 소재를 먼저 알았는데, 단가가 비싸고 깨질 위험도 있어서 사용하지는 않았다. 대안이 될 만한 재활용 소재가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이 전시에 초대되어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만났다. 


재생플라스틱을 재료로 다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을텐데, 작업은 어땠나. 

직업 특성상 소재를 보면 어느정도 물성이 예상된다. 판재 형태로 된 재생플라스틱을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은 가공해주겠다는 업체가 별로 없겠다는 거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이번에 받은 판재 중 일부가 휘어 있었다. 판재가 휘어 있는 정도에 따라 가공하는 데 제약이 많다보니 업체에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아크릴을 자르는 톱날과 목재를 자르는 톱날이 다른데, 이 두 가지를 혼용하는 업체들이 많지 않다. 개인 공장을 보유하고 있진 않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작업해주는 업체를 찾기가 쉽진 않았다. 


예상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이유는 소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가. 

가공성에 대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소재를 한번 써보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디자인을 계속 고민했다. 위험 부담을 지면서까지 새로운 디자인을 실험해보는 것보다는 이 물성을 한번 경험해보는 것에 중점을 뒀고, 마침 판재를 활용해 구현해보고 싶은 스툴 디자인이 있었다. 포스트스탠다즈의 강점 중 하나가 금속을 잘 쓴다는 건데, 이번에는 오로지 재생플라스틱 판재로만 이루어진 가구를 만들어서 재활용 소재가 다시 새로운 가구가 되는 순환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소재로도 여전히 포스트스탠다즈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제품을 완성해냈다. 스툴은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건가.

공정은 단순하다. CNC가공 후에 결합하는 공정을 거쳤다. 플라스틱과 플라스틱을 결합할 때, 망치로 쳐서 끼우거나 피스로 결합할 수도 있겠지만 깨지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홈을 파낸 다음, 본드로 고정하는 방법을 택했다. 본드가 더 잘 밀착될 수 있게, 결을 낸다고 해야되나. 나무는 원래 가진 결이 있다보니 파내는 작업은 따로 하지 않는데, 표면이 매끈한 플라스틱 특성상 필요한 공정이었다. 


다른 팀에서도 판재가 휘어 있었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소재가 잘 휘는 만큼 잘 펴진다. 편평한 데 두고 무거운 걸 올려둔 채로 며칠 지나면 금방 펴진다. 소재가 상용화되려면 보관이나 이동 시 유의사항 등을 잘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다. 

앞으로 내가 이 소재를 사용한다고 상상할 때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알지만,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이용해 몰딩 가구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궁금했다. 지금까지 대량 생산 위주의 플라스틱 의자들만 있어왔지 않나. 재생플라스틱 소재로 커스텀메이드 의자를 몰드 방식으로 제작해보고 싶다. 몰드 제작을 할 수 있다는 게 플라스틱이 가진 물성의 특징이지 않나.
바라는 점 중 하나는 지금처럼 무늬가 있는 것도 좋지만, 단색에 가까운 판재도 생산된다면 좋겠다. 무늬가 화려해서 첫눈에 보면 강렬함은 있겠지만 공간에 두고 오래 가구로 쓰기엔 피로감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되는 면도 있다. 꼭 대비가 강한 무늬나 원색만 예쁘다고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사실 단조롭고 평범한 색깔도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만나는 색이지 않나. 평소에 쉽게 접하는 색감과 패턴을 가진 소재들을 재해석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의외성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디자이너로서 지향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포스트스탠다즈는 제품, 공간디자인부터 기업과의 협업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브랜드이다.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다 보면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나. 

많이 언급은 되지만, 아직까지는 컨셉에 가까운 수요인 것 같다.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할거야’라는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개념을 빌리는 것에 가깝지 않나. 실제로 기업들이 ESG경영을 하기란 어렵다. 아직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고 자칫 잘못 접근하면 그린워싱이 된다. 필요성은 느끼는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 같다. 하지만 점차 달라지지 않을까. 10년 전만 해도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많이들 전기차를 선호하지 않나. 


이번 작업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평소에도 가구 이름을 짓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우드 스툴’이라고 붙이는 정도. 이 제품에 이름이 필요하다면 ‘수납이 가능한 플라스틱 스툴’이 되지 않을까. 누가 봐도 상상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조형물이라 이름도 쉬운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바로 이해도 되고. 이 제품은 거창한 의미가 아니다. 재생플라스틱을 이용한 하나의 예시로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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