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상관없었다. 그냥 그 재료에 맡겨보고 싶었다.”
제로랩은 ‘stool365’프로젝트를 통해 나무, 철, 콘크리트까지 다양한 물성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이용해 스툴을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의자를 만들 때 중요한 부분이 상판과 다리가 붙는 방식이다. 단순하게는 자르고 붙이는, 근본적인 기술들이지만 소재나 구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식을 적용한다. 늘 써왔던 금속이나 목재는 가공을 거치긴 하지만 좀 더 자연물에 가깝지 않나. 반면 재생플라스틱은 철저히 인공적인 소재인 데다 처음 시도해보는 거라 제로랩의 작업 방식을 이 소재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했다. 큰 틀에서 보면 방식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상판과 등받이로 가공해 철제 구조물과 결합했다.
등받이로 가공한 판재 표면에 울퉁불퉁한 질감이 보이던데, 어떻게 만들어낸 건가.
재생플라스틱 판재 특징 중 하나가 열에 약하다는 점이지 않나. 재단할 때 생기는 마찰열에 판재 단면이 조금 눌러붙는 걸 보고 오히려 열 때문에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온풍기로 열을 가해 밴딩을 만들어냈다. 실은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현상을 만나기도 했다. 밥 먹다가 깜빡하는 바람에 오버쿡해버린 거다. 판재가 열풍을 오래 만나니 표면이 녹아 울퉁불퉁한 질감이 올라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재밌는 발견이었다.
예상치 못한 실수가 독특한 질감을 빚어낸 건가. 소재의 약점을 가능성으로 접근하는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작업자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소재의 약점이 배제되기도, 유일한 특징이 되기도 할 거다. 나에게는 인공적인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무늬와 색상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가 선택하는 많은 산업 재료들이 흠집 하나 없고 규칙적이지 않나. 이번에 쓸 판재 색상을 랜덤으로 요청한 이유도 어떤 색과 무늬를 가지고 있든 그냥 그 재료에 맡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소재의 예측 불가능은 제품을 만드는 작업자에겐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재생플라스틱 판재가 소재로서 매력이 더 크다고 보나.
매력은 충분하다고 느낀다. 단순히 잘라서 상판으로 쓸 수도 있고, 열을 활용한 소재의 변형을 활용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이 소재가 상용화되려면 두께 편차는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판재인데도 부분마다 두께가 다른 것도 있었다. 그리고 소재의 가격. 재생플라스틱 판재로만 제품을 만들기엔 소재 가격이 부담스러운 편이라 일부분만 활용하는 접근부터 가능할 것 같다.
이 판재의 규격 또한 개선되면 좋겠다. 폭이 580mm인데, 시중에서 자주 쓰이는 목재나 금속 판재의 표준규격이 1220mm다. 다른 소재와의 호환성을 고려한다면 표준 규격에 맞추거나 그 절반 사이즈로 나오면 좋겠다.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쓰기 편한 규격이나 적정한 비용같은 요소들이 결국 이 소재를 선택하는 큰 이유가 될테니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작업자들은 이 소재에 어떤 매력과 불편, 의미를 느끼는지에 대한 솔직한 얘기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 나, 이 재료 써보고 싶다’는 호기심 이 다였다. 병뚜껑을 녹여 키링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생플라스틱이 판재로 나온다고?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인 거다. 판재라면 나도 써볼 수 있겠는데? 내 작업에 어떻게 써보지? 빨리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컸지, 재생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이 가지는 환경적 의미랄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는 아직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평소에는 어떤가.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 재활용같은 이슈와 내가 하는 작업을 연결지어 고민하기도 하나.
물론 관심이 많지만, 누구나 느끼는 책임감을 지구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또 아빠로서 느끼는 정도인 것 같다. 지구를 위해서 내 작업물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욕심은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전시와 관련한 작업을 할 때면 소모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들어가는 물량은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쓰여지는 기간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 달 남짓뿐이다. 전시가 끝나면 폐기되는 것들이 많다. 전시를 위해 만든 물건들이 전시 이후에도 유효한 경우가 많지 않다.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작업을 안 할 수도 없어서 작업 과정에서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하고 싶다. 최근에 주로 금속을 쓰는 데엔 재료의 순환을 고려한 것도 있다. 폐목재 역시 적당한 쓰임으로 재활용된다는 걸 알지만, 금속이 비교적 자원순환률이 더 높지 않나. 이왕 만들거면 소비재로서 잘 쓰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stool365’프로젝트에 투영하기도 했다.
‘stool365’프로젝트 속에 그런 고민들이 함축되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재생플라스틱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으로 겪어본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글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재생플라스틱 판재가 단순히 소재였는지, 혹은 의미였는지. 확실한 건 ‘유사성’은 경험했다는 거다. 기존에 내가 쓰던 금속이나 목재와 다른 물성을 가졌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비슷하네? 시간을 두고 이 소재를 연구하듯 작업해보고 싶다.
제로랩 @zero_lab
전시공간 디자인과 가구, 집기류 등을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뭐든, 상관없었다. 그냥 그 재료에 맡겨보고 싶었다.”
제로랩은 ‘stool365’프로젝트를 통해 나무, 철, 콘크리트까지 다양한 물성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이용해 스툴을 만드는 과정은 어땠나.
의자를 만들 때 중요한 부분이 상판과 다리가 붙는 방식이다. 단순하게는 자르고 붙이는, 근본적인 기술들이지만 소재나 구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방식을 적용한다. 늘 써왔던 금속이나 목재는 가공을 거치긴 하지만 좀 더 자연물에 가깝지 않나. 반면 재생플라스틱은 철저히 인공적인 소재인 데다 처음 시도해보는 거라 제로랩의 작업 방식을 이 소재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했다. 큰 틀에서 보면 방식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상판과 등받이로 가공해 철제 구조물과 결합했다.
등받이로 가공한 판재 표면에 울퉁불퉁한 질감이 보이던데, 어떻게 만들어낸 건가.
재생플라스틱 판재 특징 중 하나가 열에 약하다는 점이지 않나. 재단할 때 생기는 마찰열에 판재 단면이 조금 눌러붙는 걸 보고 오히려 열 때문에 재밌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온풍기로 열을 가해 밴딩을 만들어냈다. 실은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현상을 만나기도 했다. 밥 먹다가 깜빡하는 바람에 오버쿡해버린 거다. 판재가 열풍을 오래 만나니 표면이 녹아 울퉁불퉁한 질감이 올라왔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재밌는 발견이었다.
예상치 못한 실수가 독특한 질감을 빚어낸 건가. 소재의 약점을 가능성으로 접근하는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작업자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소재의 약점이 배제되기도, 유일한 특징이 되기도 할 거다. 나에게는 인공적인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무늬와 색상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가 선택하는 많은 산업 재료들이 흠집 하나 없고 규칙적이지 않나. 이번에 쓸 판재 색상을 랜덤으로 요청한 이유도 어떤 색과 무늬를 가지고 있든 그냥 그 재료에 맡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소재의 예측 불가능은 제품을 만드는 작업자에겐 불안 요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재생플라스틱 판재가 소재로서 매력이 더 크다고 보나.
매력은 충분하다고 느낀다. 단순히 잘라서 상판으로 쓸 수도 있고, 열을 활용한 소재의 변형을 활용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이 소재가 상용화되려면 두께 편차는 개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의 판재인데도 부분마다 두께가 다른 것도 있었다. 그리고 소재의 가격. 재생플라스틱 판재로만 제품을 만들기엔 소재 가격이 부담스러운 편이라 일부분만 활용하는 접근부터 가능할 것 같다.
이 판재의 규격 또한 개선되면 좋겠다. 폭이 580mm인데, 시중에서 자주 쓰이는 목재나 금속 판재의 표준규격이 1220mm다. 다른 소재와의 호환성을 고려한다면 표준 규격에 맞추거나 그 절반 사이즈로 나오면 좋겠다.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쓰기 편한 규격이나 적정한 비용같은 요소들이 결국 이 소재를 선택하는 큰 이유가 될테니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작업자들은 이 소재에 어떤 매력과 불편, 의미를 느끼는지에 대한 솔직한 얘기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 나, 이 재료 써보고 싶다’는 호기심 이 다였다. 병뚜껑을 녹여 키링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생플라스틱이 판재로 나온다고? 이건 완전히 다른 얘기인 거다. 판재라면 나도 써볼 수 있겠는데? 내 작업에 어떻게 써보지? 빨리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컸지, 재생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이 가지는 환경적 의미랄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는 아직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평소에는 어떤가.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 재활용같은 이슈와 내가 하는 작업을 연결지어 고민하기도 하나.
물론 관심이 많지만, 누구나 느끼는 책임감을 지구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또 아빠로서 느끼는 정도인 것 같다. 지구를 위해서 내 작업물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욕심은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전시와 관련한 작업을 할 때면 소모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들어가는 물량은 어마어마한데, 실제로 쓰여지는 기간은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 달 남짓뿐이다. 전시가 끝나면 폐기되는 것들이 많다. 전시를 위해 만든 물건들이 전시 이후에도 유효한 경우가 많지 않다.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작업을 안 할 수도 없어서 작업 과정에서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하고 싶다. 최근에 주로 금속을 쓰는 데엔 재료의 순환을 고려한 것도 있다. 폐목재 역시 적당한 쓰임으로 재활용된다는 걸 알지만, 금속이 비교적 자원순환률이 더 높지 않나. 이왕 만들거면 소비재로서 잘 쓰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stool365’프로젝트에 투영하기도 했다.
‘stool365’프로젝트 속에 그런 고민들이 함축되어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재생플라스틱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으로 겪어본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글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재생플라스틱 판재가 단순히 소재였는지, 혹은 의미였는지. 확실한 건 ‘유사성’은 경험했다는 거다. 기존에 내가 쓰던 금속이나 목재와 다른 물성을 가졌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비슷하네? 시간을 두고 이 소재를 연구하듯 작업해보고 싶다.
제로랩 @zero_lab
전시공간 디자인과 가구, 집기류 등을 디자인하고 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