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잠 dozamm

“최대한 남김없는, 동시에 아름다운 쪽으로 향하는 일탈이었다.”



도잠의 분위기에 비해 재생플라스틱 판재 특유의 무늬가 너무 화려하게 느껴지진 않았나. 

도잠의 정체성과 달리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색과 무늬를 좋아한다. 게다가 전공이 산업디자인이었기 때문에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가진 현대적인 매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내가 취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다, 플라스틱이. 그리고 그 소재를 융합한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도. 재생플라스틱 소재 특성상 색의 조합과 무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매력으로 느껴졌다. 그 점에선 자연물과 닮은 구석이 있더라.   


이번에 작업한 제품의 개수가 상당히 많다. 단시간에 작업하기 힘들었을텐데.

처음부터 많이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 샘플 테스트를 해보면서 어떤 구성이어야 최대한 재료를 남기지 않고 다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큰 제품과 작은 제품들 모두 만들게 됐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무와 조합했을 때, 재생플라스틱이 잘 어울렸다. 이왕이면 남는 부분 없이 다채로운 디자인과 크기로 제품에 적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쓰는 재료다 보니 많이 조심스러웠다. 재단부터 최종 작업까지 전부 혼자 진행하면서 문제가 생길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별탈없이 제작까지 마쳐서 다행이다.

실은 큰 탈이 날 뻔했다. 다행히도 해결은 됐지만. 한번도 플라스틱 재단을 해보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전문 업체로부터 기술 지원을 받아 샘플링을 진행하는데, 재생플라스틱 판재가 생각보다 쉽게 잘렸다. 이후에 자신감이 충만한 채로 재단에 몰두하다가 그만 톱날이 부러져버린 거다. 작업은 빨리 마쳐야하는데, 당장 여분은 없고 주말이라 날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부랴부랴 파주까지 가서 구해왔고, 다행히 재단은 끝냈다.


마감은 해야하고, 기계는 따라주질 않고. 아찔한 상황이었겠다. 그런데 플라스틱 재단용 톱날은 어떻게 다른건가.  

목재용과 플라스틱용이 따로 있다. 톱날의 나사선 방향이 달라서 목재용은 목재에만 쓰고 플라스틱용은 보통 아크릴이나 포맥스 등에 쓴다.


톱날이 달라진 것 외에 나무를 다룰 때 공정과 차이는 없었나.

재단, 접합, 샌딩까지 방식은 나무와 거의 동일했고, 디테일이 조금씩 추가된 정도. 소재가 바뀌면서 재단할 때 신경써야 할 것이 달랐다. 보통 자재를 받을 때부터 꼼꼼하게 확인하는 편이다. 두께는 균일한지, 흠은 없는지. 나무도 때에 따라 조금씩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꼼꼼하게 봐야 작업할 때 뭘 더 신경써야 할지, 나무의 아름다운 결이 더 잘 보일 수 있는 방향은 어디일지 계획이 선다. 나무는 가공 전에 샌딩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 표면이 매끈하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재생플라스틱 판재엔 스크래치가 있어서 바로 가공에 들어가면 마감이 깨끗하진 않겠더라. 그리고 합판보다는 두께가 균일하지 않았다. 무늬도 일정하지 않고. 그래서 작업하기 전에 모든 판재의 사진을 찍고 디지털로 변환해 설계한 다음, 그대로 제작했다. 무늬가 균일하지 않거나 표면에 흠이 있는 부위는 덜 보이고, 아름답게 무늬가 흐르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나무를 다룰 때에도 나무의 결을 많이 신경쓰는 편인가.

멤버들과 항상 하는 얘기가 아름답게 만드는 목표에 대한 거다. 아무렇게나 잘라서 쓰면 내 의도가 보이지 않으니까. 처음부터 나무를 잘 살피고 어떻게 하면 매력이 더 잘 보일 수 있는지 끝까지 고민한다.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다룰 때에도 그 목표는 똑같았다.


공정이 추가되기도 하고 예측하지 못한 돌발상황도 있었다. 그 과정을 겪는 동안 재생플라스틱 판재를 소재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변화가 생겼나.

이 소재를 써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후에 적극적으로 제품 라인으로 생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물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플라스틱과 나무를 결합했을 때, 이런 변화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다.
첫번째는 안전에 대한 고민이다. 아무래도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나무를 다룰 때보다 보호 장비를 더 꼼꼼히 하고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판재를 재단하고 샌딩하는 과정에서 집진기가 있어도 아주 미세한 플라스틱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재활용된 소재라 할지라도 플라스틱이니 혹시나 물로 흘러들어갈까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평소에도 나의 작업이 미치는 환경적 영향을 자주 고민하는 편인가.

지금까지 단일 소재를 고집하는 이유는 지속가능성 문제때문이었다. 제품에 필름 하나만 붙어도 재활용이 어려워진다. 움직임이 꼭 필요한 부위에 경첩을 다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종류의 부품이나 재료를 되도록 쓰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가 만든 가구도 언젠가는 폐기되지 않나. 폐기 이후에 순환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품을 만든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투리 자재들은 모아서 MDF합판 만드는 공장에 보낸다. 그럼 그 자투리들도 버려지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 거고. 모든 공정에서 낭비가 될 만한 것들은 하지 않다 보니 운신의 폭이 좁은 건 사실이다. 시각적으로 제품이 단조로워 보이는 경향도 있고. 그럼에도 선택하는 작업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세심한 선택들이 도잠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도잠이어서, 도잠만이 할 수 있는 가구이기에 팬들이 많지 않나. 그들에게 이번 제품은 어떻게 소개하고 싶나.

내가 느낀 이 소재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싶다. 플라스틱을 순환하고자 하는 사회적인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고 느낀다.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다시 재활용하기까지 과정을 거쳐 작업자인 나에게로 온 소재이지 않나. 또 다양한 폐플라스틱이 모였기 때문에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무늬도 매력적이다. 다른 소재에선 구현하기 힘든 원색의 조합들을 잘 보여주고 싶다. 차반이나 다반의 경우, 그릇을 놓는 면은 나무를 쓰고 손으로 잡는 부분은 플라스틱을 써서 심리적인 저항감도 낮춰보려고 했다. 보기에 예쁘지만 실용성도 있을 거다.  


소재만 달라졌을 뿐인데 소재의 아름다움에서부터 환경적 영향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재생플라스틱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남겼나.

도잠에겐 일종의 일탈이었다. 하고 싶어도 브랜드의 정체성이나 여러 상황 때문에 쉽게 시도할 수 없었던 걸 경험했다. 좋은 일탈이었다.


도잠 dozamm dozamm.com @dozammi

합판 짜맞춤 가구 제작 기술을 연구, 개발하여 도잠의 여성 작업 공동체가 직접 가구와 생활 소품, 문구류 등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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